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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 번역/帷 토바리 (@tobari_info)

2023.12.19 토바리 SS / 새벽을 기다리는 사람

by 뎅뎅이 2025. 6. 20.

새벽을 기다리는 사람

가끔은 무서워진다.

소리나 말처럼, 형태가 없고 한 곳에 머무를 수 없는 것에 열중하고, 그것으로 생계를 이어간다는 사실이.

보편적인 가치도 없고, 통일된 규격도 없다.


‘취향’ ‘감각’ ‘분위기’


…그런 그때그때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변하는 것들에 가치를 찾아 대가를 받고 살아간다.

덜컹

동전을 넣으면 음료가 나오는 자동판매기 앞에서, 캔을 꼭 쥐고 생각한다.

알기 쉬운 가치.


알기 쉬운 대가.

이 한 병에 담긴 기술, 영양, 기업의 노력이 손바닥에 느껴지는 무게 이상이다.


이런 멋진 것들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기에 사회가 유지되는 것일 테다.

그렇다면 나는?

학식도 없고 기술도 없는 내가, 근거 없이 내뱉지 않으면 못 견디는 소리의 덩어리.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만들어낸, 형태 없는 것.

머릿속 혼돈에서 짜내낸 하나의 프레이즈에, 얼마나 큰 가치가 있을까.


그 위에 올리는 말에,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이 성대를 떨며 내뱉는 소리를, 누가 어디서 들어줄까.

그런 것에, 이 손바닥의 캔 한 병에 붙는 수백, 수천의 가치가 붙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어딘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느낀다.

거기까지 생각하면, 이성이 속삭인다.


경고음이 울리고 있었다.


정신이 돌아와서는 안 된다고.

정말 그런 가치가 있는 걸까?


이 상황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이걸 할 수 없게 되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무서워진다.

무서워진다.

너무 무서워서 견딜 수 없다.

차갑게 식은 겨울바람이 머릿속으로 쏴 하고 불어 들어와 정신이 돌아올 것 같은 이 순간이 정말 싫었다.


예전부터 그랬다.


큰 문제 없이 무사히 지내고 있을 때일수록, 뒤로 물러나는 생각이 머리를 들이민다, 나쁜 버릇이다.

손 안의 캔을 다시 쥐고, 뚜껑을 열어 한 모금 마신다.


블랙커피의 쓴맛이 서서히 위에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아마 정신이 돌아오면 지는 거겠지.

창작자의 자존심, 자긍심, 자기긍정.


안타깝게도,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 모든 것과 인연이 얇았다.


집착이 강할 뿐, 대응력이 없고, 다른 할 줄 아는 것도 없다.


나는 그저 머릿속 혼돈에서 소리와 말을 투박하게 이어 짜내어 내뱉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 ‘단지’에 가치를 둬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잠 못 들 정도로 고민하고, 이게 맞는 걸까 자문하고, 재능이 없다는 악마와 싸우며, 머리를 긁적이며 오선지와 마주한다.

그것은 마치 캄캄한 밤길을 혼자 걷는 것처럼, 끝없는 외로운 작업이다.

겨우겨우 그것을 넘어섰다고 해도, 새로 만든 것을 세상에 내놓을 때마다 아직도 싫고, 부끄럽다는 생각과 싸우고 있다고 고백하면, 혼날까.

…하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 단 한 구절이 문득 떠올라, 그 어둠에 빛이 비치는 때가 있다.

이거… 엄청 좋은 거 아닐까?

좋은 느낌, 인 것 같다.

난, 천재가 아닐까.

그 순간의 압도적인 성취감과 무적의 시간은 마치 신세계의 신이 된 듯한 기분이다.


물론, 다음 날 아침이나 단 몇 초 후에는 정신이 돌아오지만.


그런 건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고, 말한 적도 없다.

하지만 그 한 줄기 빛을 똑같이 발견해주는 동료들이 있기에, 나는 아직도 여기 있는 것 같다.

HAPPY BIRTHDAY, 나 자신.

이 구절을, 세상에 만들어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렇게 느낄 순간이 이제 조금만 더.


부디, 최대한 오래.


부디, 계속되기를.

 

#하시바쿠로이탄생제2023

#쿠로이사람 원문#くろいひと

#창작의여명

 

https://x.com/tobari_info/status/1736997854345097338